본문 바로가기

인문심리학

읽기 두려운 톡 — 속도의 오해 2.0

반응형

* 메타 설명 : 빠른 사람들끼리도 어긋난다. 한쪽은 즉각 반응형, 다른 쪽은 정리형. 속도는 같아도 방향이 다를 때 생기는 ‘속도의 오해 2.0’.


 

 

예전에 상사가 내 톡을 읽고 말했다.
“너의 톡은 너무 길어서, 열어보기가 두려웠어.”

그날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까?
사실 그 톡은 업무상 꼭 필요한 설명이었다.
상황이 꼬여 있었고, 정확히 정리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었다.
짧게 쓰면 책임감이 없어 보일까 걱정돼,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누락 없이 썼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 몇 줄이 버겁게 느껴졌던 것이다.


윤팀장, 나한테 보낸 톡 무슨 말이야? 다시 짧게 보내줘!

 



나는 반응이 빠른 편이다.
질문을 받으면 즉시 답이 떠오르고,
결정도 빨리 내리는 쪽이다.
그런데 그날의 톡은,
‘생각이 느려서’가 아니라 ‘정확히 정리해서’ 보냈던 글이었다.
그 사람도 나만큼 빠른 사람이었다.
다만 방향이 달랐다.

나의 빠름은 정리형 속도,
그의 빠름은 반응형 속도였다.
나는 전체를 이해하고 한 번에 완성하려 하고,
그는 상황을 받자마자 바로 반응하고 싶어 했다.
이 두 가지 빠름이 만나면,
리듬이 비슷해서 잘 맞을 것 같지만 오히려 피로가 생긴다.
서로의 타이밍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건 느림과 빠름의 문제가 아니라,
빠름의 종류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충돌이다.
정리형은 ‘완성된 문장’을,
반응형은 ‘즉각적인 신호’를 중요하게 여긴다.
정리형은 “조금만 기다려, 정리해서 말할게”라고 하고,
반응형은 “지금 바로 알려줘”라고 한다.
둘 다 효율적이지만,
대화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다.


회사에서 이런 리듬 차이는 자주 일어난다.
보고를 빠르게 하려는 상사와
정확한 근거를 준비하려는 부하직원 사이.
둘 다 성실하지만 서로 답답하다.
연애에서도 비슷하다.
하나는 ‘즉시 대화’를,
다른 하나는 ‘정리된 대화’를 원한다.
둘 다 진심이지만,
마음의 시간대가 달라 같은 언어로 다른 대화를 하게 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빠른 사람끼리도 쉽게 지친다.
정리형은 “왜 그렇게 즉흥적이야?” 하고,
반응형은 “왜 그렇게 준비가 오래 걸려?”라고 한다.
그러나 둘 다 빠르다.
단지 집중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정리형은 전체 그림을 한 번에 완성하려 하고,
반응형은 순간의 흐름 속에서 조각을 맞춘다.


속도를 맞춘다는 건
누가 빠르고 느린지를 정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 집중하는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정리형에게는 “지금 바로”가 부담이고,
반응형에게는 “조금 있다가”가 불안이다.
그래서 대화의 중심은
‘속도’보다 ‘안정감을 느끼는 시점’에 있다.

이제 나는 상대의 리듬을 관찰하려 한다.
반응형인 사람에게는 핵심만 먼저 전하고,
정리형인 사람에게는 맥락을 남겨둔다.
결국 대화는 타협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대를 존중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같은 속도로 움직여도
다른 리듬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어떤 이는 “지금이 중요”하고,
어떤 이는 “정확함이 중요”하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그 차이를 알아차릴 때,
빠름은 다툼이 아니라 조화가 된다.


리듬 충돌을 줄이는 아주 짧은 해결 메모

 

 1. 첫 줄 규칙: 결론/요청/마감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반응형 안심 포인트)
 2. 두 갈래 본문:
 • 반응형에게는 선택지 2개를 먼저,
 • 정리형에게는 맥락 2–3문장을 먼저.
 3. 채널·시간 합의: DM=즉시 신호, 메일=정리·기록, 문서=최신본. 야간 무알림 시간은 미리 정해 둔다.
 4. 길이 예산: 1차 메시지는 400자 이내, 나머지는 링크/첨부로 ‘더보기’ 에 둔다.
 5. 오해 리셋 3문장: “길이/톤으로 부담 줬다면 미안. 원하는 속도·형식 알려줘. 다음부터는 ‘한 줄 결론→링크’로 보낼게.”




빠른 사람끼리도 어긋난다.
속도는 같아도, 집중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응형